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학부에 합격하고도, 진학을 스스로 포기한 제자가 있습니다.
당시 그 학생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외교관이라는 꿈을 품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연세대 합격은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대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였습니다. 이미 와세다에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또 하나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와세다에 남기로 했습니다.
합격한 대학보다,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대학을 선택할 때 우리는 흔히 학교 이름부터 비교합니다. 어느 대학의 평가가 더 좋은지, 주변에서는 어디를 더 알아주는지, 졸업 후에는 어느 쪽이 유리할지 따져 봅니다.
그런 고민도 필요합니다. 다만 이 학생이 결정의 순간에 깊이 생각한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누구와 관계를 쌓아갈 것인가.”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학생에게 대학은 지식을 배우는 공간이면서, 앞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혀 갈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와세다에서 차근차근 쌓아 온 인적 네트워크와 현지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이어 가고 있는 공부와 관계가 자신의 목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새로운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고 해서, 지금까지 만들어 온 기반을 반드시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아오지 않아도 꿈을 향해 갈 수 있다는 확신
이 선택을 연세대와 와세다 중 어느 대학이 더 좋은가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정작 학생이 고민했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아이에게는 이미 외교관이라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대학 선택도 그 목표와 연결해 생각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새롭게 시작하는 길과 일본에 남아 기존의 기반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길. 아이는 자신에게 후자가 더 적합하다고 보았습니다.
와세다에서 만난 사람들, 그곳에서 쌓아 온 관계, 현지에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앞으로도 이어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선택에는 굳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합격한 뒤에도 선택은 남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합격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노력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합격 통지서를 받는 순간, 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다음 단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합격은 선택할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진학할지는 자신의 목표와 상황을 놓고 다시 판단해야 합니다.
이 학생은 새롭게 열린 기회와 이미 자신이 걷고 있던 길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선망할 만한 합격을 얻은 뒤에도, 자신의 기준에 따라 진학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원하고 합격하기까지 애쓴 마음도 있었을 텐데, 합격했다는 사실에 이끌려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일을 위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쌓아야 할지를 생각했습니다.
대학 이름 다음에 물어야 할 것
진학 상담을 하다 보면 “어디에 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성적과 전형을 분석해 가능한 대학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와 함께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어떤 경험을 해 보고 싶은지, 졸업 이후의 삶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모든 학생이 일찍부터 뚜렷한 진로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다만 목표가 있는 학생이라면 대학을 선택할 때 그 목표를 충분히 고려했으면 합니다. 학교 이름에 대한 주변의 평가와 함께, 그곳에서 자신이 실제로 만들어 갈 시간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이 제자는 외교관이라는 꿈을 기준으로 자신의 선택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와세다에 남겠다는 결정에는 그곳에서 이어 가고 싶은 관계와 경험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학생을 연세대에 합격하고도 진학하지 않은 제자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회 앞에서도 자신이 가려는 방향을 잊지 않았던 제자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