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에 입학하고도, 불과 한 달 만에 자퇴서를 내고 나온 제자가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 원광대학교 의과대학.
남들은 하나도 받기 어려운 합격 통지서를 세 장이나 동시에 받았던 학생입니다. 어릴 적부터 ‘진료교수’라는 꿈을 품고 있던 아이는 고민 끝에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의사가 되어 환자를 진료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미래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런데 입학 후 직접 경험한 환경은 자신이 예상했던 모습과 달랐습니다. 아이는 고민 끝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입시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얻은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
대학에 합격하기 전에는 합격만 하면 모든 고민이 끝날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합격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고민도 있습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환경과 실제 생활이 다를 수 있고, 목표로 삼았던 진로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면서 선택을 다시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얻은 기회를 내려놓는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학생에게는 의대에 계속 다닐 수 있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는 순간, 그 자리를 뒤로하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입시를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한 번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다음 시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는커녕, 이전에 받았던 합격 통지서조차 다시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결심한 날보다, 그다음 날들이 더 중요했습니다
제가 이 제자의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자퇴라는 결정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학교를 떠나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다시 시험을 치를 준비를 끝까지 해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목표가 힘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시 공부는 의욕이 넘치는 날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익숙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틀린 문제를 들여다보고,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다음 날 공부를 이어가야 합니다.
이미 한 번 합격했던 학생이라면 답답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하지 않아도 됐을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까지 포함해 자신이 선택한 시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현실을 떠나겠다는 결심과, 원하는 곳에 도착하기 위해 매일 행동하는 일 사이에는 긴 거리가 있습니다.
아이는 그 거리를 공부로 채웠습니다.
1년 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합격
그리고 1년 뒤, 아이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합격 소식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가르쳤던 제자의 합격은 언제나 기쁩니다. 하지만 이 학생의 소식에는 기쁨과 함께 깊은 감회가 있었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기회를 내려놓은 뒤, 자신이 원했던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공부를 이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은 다시 도전할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만으로 합격할 수는 없습니다. 그 확신을 실제 결과로 이어 준 것은 결국 매일의 공부와 끝까지 버틴 의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을 단순히 ‘더 높은 대학에 합격한 재수 성공담’으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린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했던 제자의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다시 도전하려는 학생에게 묻고 싶은 것
이 사례를 모든 학생에게 그대로 권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선택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재도전의 결과 역시 누구에게나 같을 수 없습니다.
다만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학생을 만나면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있는 곳을 떠나고 싶은 이유뿐 아니라, 앞으로 도달하려는 목표가 구체적인지. 자신의 현재 실력과 보완할 점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결과가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며 공부를 이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입니다.
목표가 높다는 사실만으로 그 선택이 단단해지지는 않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실제로 해나갈 때 선택에도 힘이 생깁니다.
이 제자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그 과정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의대 합격 통지서를 내려놓았던 날의 결심보다, 그 후 1년 동안 이어 갔을 공부가 제게는 더 크게 남아 있습니다.
자신을 믿는다는 말의 무게를, 매일의 행동으로 보여 준 제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