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저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내신도 탄탄하고, 동기부여도 충분히 되어 있던 학생이 외고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을 때, 처음에는 면접에서 무슨 실수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소개서에 단 하나의 이질적인 어휘가 끼어든 것이 문제였습니다. 특목고 자소서 첨삭을 둘러싼 이야기는 "도움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데, 제 경험상 이건 방법을 잘못 쓰면 분명히 독이 됩니다.
외고입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
제가 지도했던 학생 중에 외고를 지망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내신 관리도 성실하게 해 왔고,, 지원 동기도 명확했으며, 면접 준비도 무난하게 마친 상태였습니다. 저로서는 합격을 거의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나중에 확인해 보니 부친이 자기소개서를 한 번 손봐주면서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표현을 넣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서량이 많은 중학교 3학년이라면 그 어휘를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문제는 그 어휘 하나가 아니라 자소서 전체의 어휘 수준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느냐입니다. 입학사정관(Admissions Officer) 입장에서 보면, 한 학생의 글에서 어휘 수준이 갑자기 달라지는 지점은 타인 개입의 근거가 됩니다. 여기서 입학사정관이란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는 전문 심사 인력을 말합니다. 이분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편의 자소서를 읽기 때문에, 문체의 이질감을 꽤 예민하게 감지합니다.
이 학생은 이후 대입 시기에는 부친에게 자기소개서를 보여드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합격했습니다. 이 경험이 제게는 꽤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자소서는 학생 본인의 언어로 써야 한다는 걸 이렇게까지 실감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첨삭오류가 만들어지는 구조
여러 명에게 첨삭을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써보니 그 반대입니다. 여러 사람이 손을 댈수록 문체의 일관성이 깨지고,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습니다. 글을 많이 읽어온 사람이라면 그 이음새를 금방 알아챕니다.
특목고 입시에서 자기소개서는 자기주도학습(Self-Directed Learning)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이란 학생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방법을 선택하며, 결과를 평가하는 일련의 능동적 학습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을 서술할 때 학생 본인이 직접 쓴 문장이어야 신뢰가 생깁니다. 거기에 어른의 손길이 과하게 들어가면, 오히려 그 진정성이 무너지는 역효과가 납니다.
각 학교마다 표절검색시스템(Plagiarism Detection System)을 운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AI 판별 시스템까지 도입되는 추세입니다. 표절검색시스템이란 제출된 자소서가 기존 자료나 다른 학생의 글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자동으로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말합니다. 여기에 걸리면 단순 감점이 아니라 불합격 처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출처: 교육부](https://www.moe.go.kr)).
첨삭이 문제가 되는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여러 첨삭자의 개입으로 어휘 수준이 불균일해질 때
- 학생이 평소 쓰지 않는 어휘나 문장 구조가 삽입될 때
- 첨삭자가 직접 문장을 대신 써주어 학생의 언어가 사라질 때
- 표절검색시스템 또는 AI 판별 시스템에서 이상 신호로 감지될 때
자소서 작성원칙, 이렇게 지키세요.
그렇다면 첨삭을 아예 받지 말아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첨삭의 방식입니다. 제 경험상 올바른 첨삭은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네가 느낀 감정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좋겠다"는 피드백은 학생의 언어를 살리는 방향이지만, 문장을 직접 다시 써주는 것은 학생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행위입니다.
특목고 자기소개서는 자기주도학습 과정, 지원 동기, 입학 후 활동 계획, 진로 계획, 인성 관련 경험을 700~800자 내외로 서술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인성 영역(Character Assessment)이란 배려, 나눔, 협력, 타인 존중 등의 덕목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구체적 사례로 서술하는 항목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자신이 해결했다는 영웅담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함께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솔직하게 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https://www.kice.re.kr)).
현장 경험으로 보면, 자소서 검토를 맡기더라도 다음 원칙만은 꼭 지켜야 합니다.
1. 의견만 받고 수정은 반드시 학생 본인이 직접 한다
2. 불가피하게 직접 첨삭이 이루어졌다면, 학생의 어휘 수준에 맞게 반드시 다시 조율한다
3. 첨삭자는 한 명으로 제한하고, 여러 명에게 동시에 맡기지 않는다
4. 면접에서 자소서 기반 질문이 나올 수 있으므로, 자신이 쓴 모든 내용을 완전히 숙지한다
자소서 기반 면접(Portfolio-Based Interview)이란 제출한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근거로 지원자의 사고 과정을 검증하는 면접 방식입니다. 만약 자소서의 일부를 타인이 써줬다면, 그 내용을 면접장에서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때의 공백은 어떤 화려한 어휘보다 훨씬 치명적입니다.
자소서는 결국 학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문서입니다. 그게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결론입니다. 잘 다듬어진 문장보다 진짜 목소리가 더 오래, 더 멀리 가는 경우를 저는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지금 자소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누군가의 손을 빌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언어로 끝까지 써보는 것을 권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글에서 학생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